[뉴스펭귄 스페셜-'생명의 보고' 습지①]골프장이 삼킨 야생...파괴 주범은 '인간'

  • 서창완 기자
  • 2019.01.28 06:00

소멸된 습지 90%가 경작·개발 때문
등록 2499곳 중 보호지역 지정 44곳뿐
훼손 근본방지책 '자연자원총량제' 도입 추진

습지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특히 국내 습지보호구역 17곳에 멸종위기종 60종이 산다. 습지보호지역에서 서식하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전체의 24%에 이른다. <그린포스트코리아>가 창간한 최초 멸종위기 전문뉴스 <뉴스펭귄>은 2월2일 '습지의 날' 48주년을 맞아 멸종위기종의 보금자리인 국내 습지의 현황을 살펴보는 창간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습지는 생명체다. 

습지가 사라진다. 원인은 개발이다. 사라진 자리에는 논이나 밭, 골프장 등이 들어섰다. 자연적으로 사라진 습지는 거의 없다.

습지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라 불린다. 멸종위기종인 수달, 금개구리 등이 이곳에 서식한다. 하천·연못 등으로 둘러싸인 습한 땅인만큼 육상이나 수중생물과는 다른 환경에서 진화한 생물이 생육한다.

자연적인 가치도 높다. 습지 상류에서는 물과 하수 등 여러 물질을 받아들인다. 안정적인 물 공급으로 홍수와 가뭄을 완화한다. 오염된 물을 맑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탄소를 저장해 기후 변화 문제를 안정화할 수 있는 것도 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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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이 키우는 멸종위기종 수달 (사진 국립생태원 제공)/뉴스펭귄

◇생물 다양성의 보고… 개발엔 못 당해

환경부가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습지센터와 지난 3년간 전국의 습지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습지 74곳이 소멸되고 91곳은 면적이 감소했다.

2016~2018년 진행된 조사는 국가습지현황정보 목록에 등록된 2499곳의 습지 중 총 1408곳이 대상이다.

대부분의 습지는 개발로 사라졌다. 165곳의 습지 중 90%인 148곳은 논, 밭, 과수원 등 경작지로 이용되거나 시설물 건축 등 인위적 요인에 따라 훼손됐다. 자연적 요인으로 초지나 산림으로 변한 경우는 10%(17곳)에 그쳤다.

2013년 조사(위) 때 풀이 무성했던 경기 양평군 수대울 하천 습지는 지난해 조사 때 나대지로 방치돼 있었다. (사진 환경부 제공)/뉴스펭귄

소실된 습지 74곳 중에는 논·밭·과수원 등 경작지로 바뀐 곳이 29곳이었다. 산업단지나 골프장 등 시설이 들어온 곳은 20곳으로 그 뒤를 이었다. 경기 가평군에 있는 승안습지는 5년 만에 골프장으로 변했다. 경기 양평군의 수대울 하천 습지는 나대지로 방치됐다.

사라진 습지는 전국 곳곳에 분포됐다. 경기 23곳, 충청 21곳, 강원 13곳, 전라 12곳, 제주 3곳, 경상 2곳이었다. 면적이 감소된 습지는 전라가 52곳으로 가장 많았다.

◇장항습지와 장록습지… 습지보호지역의 두 얼굴

지난해 1월 기준 전국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44개다.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각각 24개, 13개를 지정했고, 시·도지사가 지정한 곳이 7개다. 이중 람사르습지는 모두 22개다. 람사르습지의 정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한국은 1997년 7월 28일 101번째로 가입했다.

지난해 9월 찍은 장항습지의 모습. 덩굴식물인 가시박이 자라 습지를 덮고 있다. (사진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제공)/뉴스펭귄

정부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만 하면 습지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경기도 고양에 있는 장항습지는 2006년 4월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당시 환경부가 지정한 김포대교 남단부터 강화군 송해면 숭뢰리 사이 하천제방과 철책선 안쪽의 한강하구 지역에 포함된 습지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 13년 가까이 지난 현재 장항습지는 어떤 모습일까. 환경부와 고양시가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 중인 장항습지의 생태계는 최근 급격히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4년 넘게 홍수가 나지 않아 퇴적물이 쌓여 빠르게 육지화하고 있는 장항습지는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교란종인 ‘가시박’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단체는 자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보호책임이 있는 한강유역환경청의 관리 소홀 문제도 지적했다.

박평수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는 “습지를 자연적으로 놔두는 게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다. 지금부터라도 갯골 관리를 하고 가시박을 걷어내는 등 관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에 있는 장록습지. (사진 광주전남녹색연합 제공)/뉴스펭귄

장항습지가 관리 소홀의 문제라면 습지보호구역 지정 자체를 놓고 다투는 곳도 있다. 광주시 광산구에 있는 황룡강 장록습지가 대표적이다.

국립습지센터는 지난해 2~12월 정밀조사를 통해 장록습지를 국가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만하다고 결론 내렸다. 장록습지에 식물(179종), 조류(72종), 포유류(10종), 육상곤충(320종), 양서류(2종), 파충류(5종), 어류(25종), 저서성무척추동물(48종), 식물플랑크톤(168종)과 멸종위기종인 수달(1급), 흰목물떼새, 새호리기, 삵(2급) 등 4종의 멸종위기종 등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록습지의 보호구역 지정을 가로막는 건 광산구가 황룡강변에 추진 중인 축구장·야구장 건설 사업이다. 광산구는 황룡강 둔치 7만㎡ 안에 축구장 2면, 야구장 2면, 파크 골프장 9홀, 생태블록주차장 등을 조성하는 시민운동장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부 주민들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투자선도지구로 계획된 송정역 일대 개발이 중단될까 우려도 한다.

광산구는 2015년 사업을 시작하면서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등 관련 기관에서 문제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광주시가 습지 보호구역 지정을 환경부에 요청한 건 2017년이다. 광주시와 광산구는 이 문제를 두고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광산구는 장록습지의 습지보호구역 지정을 놓고 25일 찬반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최지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환경과 개발이 꼭 상충하는 게 아니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질적 개발을 할 수 있다”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지는 습지, 어떻게 막을 수 있나

환경부는 습지보전정책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단기적으로는 개발 사업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할 때 습지가 포함되면 중점평가 대상으로 삼는다. 훼손을 최소화하고 불가피하면 신규 습지 조성을 유도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시행하는 습지총량제처럼 습지 훼손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자연자원총량제 도입을 추진한다.

자연자원총량제는 개발사업 전·후의 습지 등 자연자원 총량의 변화를 산정·평가해 훼손된 만큼 사업지 내외에 상쇄하거나 대체하는 방안이다. 보상이 어려울 경우 상응하는 복원비용을 부담하는 제도다.

현재는 생태계보전협력금 제도가 있다. 생태계보전협력금 제도에서는 개발사업의 면적이 3만㎡ 이상인 사업에 최고 50억원까지 부과한다. 용도지역에 따라 ㎡당 300원(계획관리지역)에서 1200원(자원환경보전지역)까지 부과한다. 자연자원총량제로 바뀌면 녹지 면적만 보고 계산됐던 가치에 미세먼지·소음 저감 등 생태서비스 기능이 포함돼 부담금 액수를 높이게 된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생태계보전협력금 제도는 제곱미터당 보상금이 굉장히 적고, 한도도 정해져 있었다. 자연자원총량제가 시행되면 녹지가 비싸지게 돼 보호지역에 개발을 하기보다는 기존 개발 지역 재개발 등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비슷한 제도인 ‘자연침해조정제도’가 시행 중이다. 이 제도에 따라 사업시행 전에 자연환경의 보전이나 복원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주 주거단지 개발의 경우 사업지 인근 밭을 매입해 생태 숲을 조성했고, 고속도로 건설 때도 대규모 대체지에 멸종위기 식물을 심어 개체수를 대폭 늘리는 식으로 제도가 적용됐다. 사업지나 다른 지역에 복원이나 대체가 불가능하면 훼손 비용이 부과된다.

습지의 날 

매년 2월 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다. 습지보존을 위해 1971년 12월 이란 람사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국제습지조약에서 1997년 지정했다. 국제습지조약 가맹국은 철새의 중계지나 번식지가 되는 물가의 습지를 보호해야 한다. 한국은 1997년 국제습지조약에 가입했다. 습지의 날을 기념한 건 2002년부터다.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공동으로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날 습지 보전 관련 세미나나 연구발표, 탐조대회 등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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