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15배 올랐는데..." 아이스크림가게 사장이 일회용품 치운 이유

  • 김도담 기자
  • 2020.03.04 15:51

3월의 첫날 한 아이스크림 가게 인스타그램 공지문이 눈길을 끌었다.

"오늘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PE(폴리에틸렌) 코팅 종이컵과 플라스틱 스푼을 곡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컵과 스푼으로 대체합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한 수제 아이스크림 전문점 '녹기 전에'는 지난 1일부터 귀리와 밀로 만든 컵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판매한다. 스푼은 쌀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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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리와 밀로 만든 컵에 아이스크림이 담겨 나오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사진 박정수 제공)/뉴스펭귄

"지난 3년간 이 작은 매장에서 10만 개가 넘는 플라스틱 스푼과 7만 개가 넘는 종이컵을 사용하며 마음에 가시처럼 되돌아온 17만 개의 부끄러움 때문"

박정수(30) 사장이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치운 이유다. 박 씨는 "익선동 골목을 걷다 보면 버려진 저희 매장 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잘 아시다시피 플라스틱은 근래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코팅된 종이컵도 20년 이상 썩지 않는다. 그렇게 저희 매장을 통해 버려진 스푼 10만 개는 세워서 쌓았을 때 에베레스트산 높이를 훌쩍 넘고, 컵 7만 개는 롯데 월드타워 높이의 5.6배에 달한다. 제가 판매한 제품이 이 땅에 오랫동안 유해하고 흉한 흔적으로 남겨진다는 사실이, 같은 땅을 잠시 빌려 사는 사람으로서 매번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같은 숭고한 개념보다는 스스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쓰레기로 인한 고민과 책임을 더 이상 손님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작은 신념 정도로 봐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익선동과 돈의동에 각각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전에'와 '녹기 전에 밤'을 운영 중인 박정수 씨(사진 박정수 제공)/뉴스펭귄

박 사장은 3평, 6평 남짓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전에'와 '녹기 전에 밤'을 익선동과 돈의동에 각각 운영 중이다. 독학으로 배워 만든 수제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 

그는 4일 뉴스펭귄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개발한 아이스크림 레시피가 170여개"라며 "시즌별로 다르지만 매장에는 평소 10가지 정도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놓는 편"이라고 말했다.

'녹기 전에' 주력 메뉴는 쌀, 막걸리 아이스크림이다. 쑥, 대나무 잎, 소금 감자 등 특이한 메뉴도 판매한다. 2가지 맛 아이스크림 120~130cc가 불가리아에서 수입한 곡물 컵에 담긴다. 가격은 4500원, 영업 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다(사진 박정수 제공)/뉴스펭귄
술이 들어간 수제 아이스크림이 주력 메뉴인 '녹기 전에 밤', 영업 시간은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다(사진 박정수 제공)/뉴스펭귄

아이스크림은 곡물로 만든 컵에 2가지 맛이 담겨 티슈로 감싸진 채 손님에게 건네진다. 아이스크림에는 스푼 대용으로 사용하는 쌀로 만든 빨대 반쪽이 꽂혀 있다. 

박 사장은 종이컵과 플라스틱 스푼을 포기하고 천연 대체재를 찾은 후 기본 원가가 15배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아이스크림 컵을 바꿔 기존 손님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컵은 쿠키 맛이 나고 커피를 담아도 40분 동안 흐물거리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이 좋다. 빨대는 오도독 씹어먹는 재미가 있다. 

박 사장은 "'지금 눈에 보이시는 건 전부 다 드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꺼내면서 뼛속까지 전율이 밀려왔다"면서 "포장 손님에게 나가는 스티로폼 용기 대체재는 아직 찾지 못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변경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무래도 전례가 없던 방식이다 보니 운영을 하며 어떤 문제와 수정이 생길지 모른다"면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쳐 다시 멋쩍게 종이컵과 플라스틱 스푼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마다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며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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