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기후위기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방법
[발행인칼럼] 기후위기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방법
  • 김기정/발행인
  • 승인 2020.02.1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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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9월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옆 계단에서 "문재인정부는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며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립중단을 촉구하는 모스부호 SOS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녹색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9월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옆 계단에서 "문재인정부는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며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립중단을 촉구하는 모스부호 SOS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먼저 독자들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일 듯하다. 본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10일 이런 제목의 기사를 가장 중요한 기사(톱기사)로 다뤘다. ‘축 초대 환경대통령 탄생’. 진보진영의 후보가 대권을 잡았으니 환경정책에 전향적 발전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반영된 기사였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환경정책이 사실상 퇴보했기에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대 대선에서 경쟁을 펼쳤던 다른 후보들의 환경공약보다 충분히 전향적이었고 구체성 또한 돋보였기 때문에, 공약대로라면 환경대통령이라는 이름에 별 다섯을 떡 붙여도 모자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당시 대선후보들의 환경 분야 공약을 비교, 분석하는 것은 너무나 부질없기에 굳이 들춰내는 수고는 생략한다.) 하지만 그때 그 기사는 명백한 오보였음을 뼈아프게 인정한다. 부질없는 기대였다는 자책과 배신감을 섞어.

 물론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그동안 그 기사가 오보였음을 반증한 사례가 결코 적지 않았지만, 이번에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확인됐다. 2050장기저탄소발전전략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 2도 이내 제한을 위해 대한민국이 어떤 방식으로 저탄소 사회를 구현할 것인지를 담은 로드맵이다. 2015년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올해 안에 구체적 계획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이번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은 저탄소사회비전포럼(위원장 조홍식서울대교수.이하 포럼)이 1년 가까이 논의를 거쳐 마련했다고 한다. 환경부가 7개 분과에 69명의 전문가들을 모아 이 포럼을 구성, 논의를 진행토록 한 뒤 이번에 전략이라는 제목의 검토안을 제출받은 것이므로, 이 검토안은 국제사회에 제시할 한국 정부의 초안이라 할 수 있다. 

 포럼이 이번에 제출한 ‘전략’의 핵심은 사실상 ‘넷제로(net zero)’의 포기다.  ‘넷제로’는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만큼 흡수도 해 연간 온실가스 방출량의 총합이 0이 되는 것이다. 탄소중립, 탄소배출 제로다. 포럼은 이 ‘전략’에서 모두 5개의 복수안을 제시했는데,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최대 75% 줄이는 게 제1안이다. 제5안은 감축률 목표를 40%로 잡았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 등과 함께 ‘4대 기후악당’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온 터다. 포럼의 검토안이 정부의 최종제출안으로 확정된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고 포기선언을 하게 된다면, 국제사회의 비판은 주홍글씨가 돼 오래도록 역사에 남으리라. 이런 정부의 대통령을 환경대통령으로 추켜세웠으니 명백하게 오보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심해보다 깊은 자책과 함께. 

“독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탄소사회비전포럼이 환경부에 제출한 '205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1~5안)'
저탄소사회비전포럼이 환경부에 제출한 '205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1~5안)'

지금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서 다른 것들은 뉴스로 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포기는 이렇게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거의 1년 동안 60차례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물에 탄소배출 제로 시나리오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환경부가 이 포럼의 검토안을 뛰어넘어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최종안으로 확정지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이제 사회적으로 관련 논의를 이어갈 실마리는 사라진 셈이다. 이 포럼 멤버들의 상당수가 명색이 학자들이고, 환경을 걱정하는 전문가들인데 ‘검토안’에서조차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빠졌다는 점에서 이 포럼 구성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 의심받아 마땅하다. 이 포럼은 탄소중립 달성에 대해 ‘조속히 달성해야 할 목표’라고 어물쩍 넘겼다. 

 세계 각국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키로 합의하고 구체적 계획을 수립, 이행하는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멸종의 시계를 늦추기 위해서다. 이미 수많은 연구논문이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무시무시한 파국을 경고하고 있다. 논문을 들출 필요 없이 자연현상이 쉬지 않고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남극대륙에서 사상 처음으로 영상 20도를 넘는 기온이 관측됐다.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 내뿜은 이산화탄소로 지구가 더워졌기 때문이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0도에서 1.5도로 낮추고, 이를 위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다. 국가 차원에서 2030~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진즉에 선언한 국가가 이미 73개국에 달한다. 당장 코로나19 같은 발등의 불은 아닐지라도, 지구온난화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직접적인 위협이다. 

 더욱이 탄소배출량 통계를 보면, 우리 정부가 포럼의 의견대로 넷제로 포기를 선언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맹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아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2018년 기준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면 중국이 약 113억톤으로 1위, 미국 53억톤으로 2위다. 이어 인도 26억톤, 러시아 17억톤, 일본 12억톤의 순이다. 뒤이어 독일, 이란 다음에 한국이 자리한다. 그러나 1인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누가 먼저 이산화탄소 감축에 앞장서야 하는지 순위가 달라진다. 총배출량 1위인 중국은 1인당 배출량에 있어서는 7.95톤으로 8위다. 미국은 16.14톤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다. 인도는 세계평균(4.97톤)에도 크게 못 미치는 1.94톤에 불과하다. 한국은 13.59톤으로, 1인당 배출량이 네 번째로 많다. 우리나라는 총배출량에 있어서나 1인당 수치로나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야 할 나라다. 그런데 2050년까지 약속한 넷제로 대열 합류를 회피한다? 참으로 말 안 되는 뚱딴지같은 발상이지만, 환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세계 각국에 사과하고 싶다. 

“세계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표지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표지

 

기후변화는 이제 기후위기로 바꿔 불러야 맞다.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박재용著)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인간과 지구 생태계에 직접적이고 현재적이며 심각한 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비상(emergency)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인류에게 닥친 다양한 문제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비상상황이라며,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대로 불과 10~20년이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과학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아무리 기후위기와 비상상황을 외쳐도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제2, 제3의 크레타 툰베리가 등장해도, 학생들이 수업 대신 거리에서 행진을 벌이며 기후파업에 나서도, 되레 뒷걸음질 치는 정부가 아닌가. 조명래 환경부장관이 “넷제로 선언을 끌어내겠다”고 했던 게 지난해 10월이었다. 불과 넉 달 만에 조 장관의 말은 허언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명색이 일국의 환경부장관이 중앙일간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 이렇게 값없이 뒤집히는 현실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청소년과 국내 300여 개 종교·환경단체의 연합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지구온도 1.5도 상승 제한이라는 국제적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의 조속한 정책 마련을 촉구하며 지난해 9월 21일 서울 대학로 등 전국에서 대규모 기후파업 시위를 벌였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청소년과 국내 300여 개 종교·환경단체의 연합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지구온도 1.5도 상승 제한이라는 국제적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의 조속한 정책 마련을 촉구하며 지난해 9월 21일 서울 대학로 등 전국에서 대규모 기후파업 시위를 벌였다.

 이 뿐 아니다. 온실가스 줄이고 미세먼지 잡겠다며 노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서 동시에 신규로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모순의 쳇바퀴를 달리는 게 바로 한국 정부다. 새로 짓는 발전소의 용량이 폐쇄하는 발전소 용량의 두 배가 넘는데,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겠는가. 그런 정부에 대고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포를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공허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실마리는 오스트리아에 있다. 오스트리아 새 연립정부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지난달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새 연정에 녹색당이 참여하면서 일궈낸 결과다. 오스트리아 녹색당은 지난해 9월 치러진 총선에서 이상기후에 대한 우려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일약 4당으로 약진했고, 이번 정부 구성에 처음으로 참여해 환경부장관을 비롯한 4개 부처 장관을 맡게 됐다. 오스트리아 연정은 2030년까지 모든 전기를 재생가능 에너지를 통해 생산하고, 탄소배출량이 많은 비행기를 타는 승객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올리기로 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한민국의 21대 총선이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동참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정당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 뚜렷하게 떠오른다. 특정 당명의 정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2050년에 대한민국이 탄소중립국을 선언할 비전과 구체적 실천방안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당을 찾자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유권자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때 오스트리아와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 넷제로 사실상 포기에도 비판 성명 한 줄 내지 않는 ‘말로만 환경하는 단체들’ 말고, 어떻게 하면 정부 용역 수주 받아 잇속 챙기고 위세 부려볼까 쉴 새 없이 눈 굴리는 ‘가짜 NGO들’ 빼고, 기후변화를 위기로 느끼며 비상행동에 기꺼이 동참할 사람들 모여서 판 한 번 바꿔보면 어떨까? 혹시 금배지에만 목을 매는 ‘환경팔이 후보들' 있다면 차제에 꼭 한 마디 해야겠다.

“죄송하지만, 꿈 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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